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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사

르네상스 음악

하루(haroo) 2024. 4. 16.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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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Renaissance)는 14세기경부터 16세기까지 유럽에서 일어난 ’문예부흥 운동‘을 말한다. 르네상스의 어원적 의미는 그리스의 고전에 대한 '부활'이나 '재생'을 의미한다. 이것은 중세 기독교의 절대주의적인 신본주의적(19) 규범에서 벗어나 인간성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사상으로의 복귀라고 할 수 있다. 정치 • 사회적으 로도 봉건사회가 무너져 가고 시민계급이 성장하여 인본주의의 정착은 가속화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조류는 학문과 문화에 대한 관심을 고취해 과학과 예술 분야에 있어서 놀라운 발전을 가져오게 하였다. 미술 분야에서는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미켈란젤로(Buonarroti Michelangelo), 첼리 니(Benvenuto Cellini). 라파엘로(Anzio Raffaello).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 등의 화가들이, 문학에서는 에라스뮈스(Desiderus Bras mus). 마키아벨리(Nicol Machiavelli) 등의 문호들이. 과학에서는 활판 인쇄술을 발명(1454년) 한 구텐베르크(ohannes Gutenberg)와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와 이를 발전시킨 갈릴레이 (Galileo Galilei) 등의 과학자들이 이 시대를 주도하였다.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로는 터키족의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함락(1453). 영국과 프랑스 간의 100년 전쟁 종결(1453).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의 서인도 제도의 발견(1492) 등이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음악(Remaissance Music)은 다른 예술 분야처럼 획기적인 변화가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점차 심미적인 인본주의 작품을 만들려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특히 세속음악은 종교음악과 뚜렷이 구별되면서 제자리를 찾기 시작하였고, 종교음악은 과거의 전통과 새로운 변화를 공유하면서 최상의 단계로 끌어올려졌다. 과거 중세의 제한된 창작에서 벗어나 작곡가의 독창성에 의한 자유로운 창작이 행해지면서 작곡가들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모든 음악 요소를 동원하여 작품을 만들었다. 성악과 기억의 조합(월금), 폭넓은 문학의 영역으로부터 채택된 가사. 반음계적인 화성, 풍부한 음향의 대위법 등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자유롭고 활발하게 사용되었다. 이제 음악에서는 위대한 작 곡가와 위대한 작품이 더욱 부각되었고, 이러한 작품들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의 발명에 힘입어 'Petrucci'가 만든 인쇄에 의한 악보에 널 리 보급되고 보존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교회 밖의 다양한 계층들에게도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폭넓게 제공함으로써 많은 음악 애호가가 나타났으며, 긍정이나 상류계급 층은 물론 시민계급에서도 음악의 후원자들이 늘어나기 위해 시작하였다. 또한 음악 입문서나 연주가를 위한 교본, 그리고 음악이론 서적들이 출판됨으로써 음악은 더욱 학문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

 

15세기 후반부의 음악
15세기 후반부의 음악은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활동한 소위 플랑드르악파가 주도하였다. 이들의 음악을 15세기 후반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이들의 음악에서부터 이미 르네상스가 시작된다. 따라서 플랑드르 작곡가들은 초기 르네상스 작곡가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추구한 음악은 획기적인 변화는 없었지만, 르네상스의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하여 보다 자유로운 창작 기법을 수용한 음악이었다.르네상스의 재생'이라는 의미는 고대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이 추구한 학문, 문화, 예술에 대한 이념적 복귀라고 해석될 수 있다. 고대로의 이러한 이념적 복귀는 인본주의적 사상을 기초로 하고 있으며 과학과 문학, 예술 분야 등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다. 르네상스를 시작하는 15세기 후반의 음악은 부르고뉴 악파와 견주어 플랑드르악파로 불리는 국제적인 작곡가들에 의해 확립되고 발전되었다.
구텐베르크(Gutenberg)의 금속활자 발명으로 이들의 음악은 인쇄되어서 진 유럽으로 소개되었고, 이에 따라 15세기를 주도한 네덜란드 작곡가들은 다른 유럽 국가에 초빙되는 사례가 잦았다. '빌라를 트'는 이 달리아의 베네치아에서, 클레멘트(Clement)와 공베르(Gombet)는 독일 지역으로 진출하여 활동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머무르며 활동한 국가에서, 네덜란드 음악에 기초하지만, 민족적 특성을 반영한 음악들을 창작하여 새로운 경향의 음악을 끌어 나갔다. 이 시대의 중요한 음악 형식은 여전히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미사, 모테트, 샹송 등이었다. 특히 작곡가들은 가사의 선택이 자유로운 모테트에 더욱 큰 흥미를 가졌기 때문에 모테트가 다른 음악 형식들보다 더욱 많이 작곡되었다. 16세기 초반에 이르러 모테트는 가장 인기 있는 종교음악 형식이 되었다. 그러나 모테트의 창작 기법은 기본적으로 미사의 창작 기법과 동일하였다. 미사와 마찬가지로 정선율로 사용하기 위해 기존하는 선율을 차용하거나 그 밖의 다른 음악 재료들은 빌려서 인용하거나 장식하는 일이 흔하였다. 미사는 샹송을 이용한 패러디기법을 자주 사용하였다. 인용 기법과 패러디는 16세기 미사에서 가장 유행했던 창작 기법이다. 좋아 갬을 비롯한 15세기 후반의 작곡가들이 선호한 네덜란드 카논은 점차 사라졌고, 16세기 초반에는 짧은 악구에 의한 모방 기법이 일반적으로 애용되었다. 악상의 대조를 위한 방법으로는 전체 성부 중의 일부를 생략하고 2성부나 3성부만을 사용하여 전체 성부들과 대조를 이루게 하는 기법이 사용되었다. 일반적으로 종교음악은 4성부이지만 5성부나 6성부도 자주 나타났다. 각 성부는 동등한 중요성을 가지며 음역은 낮은 음역까지 확대되어 전체적으로 음역의 폭이 넓어졌다. 세속음악은 대체로 3성부인데 위 선율을 노래하고 아래 성부들은 악기로 연주하는 독창 형태로 연주되었으며 때때로 샹송을 악기로 연주하는 기악 형태로 작품화되기도 하였다. 16세기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교회선법에 기초하고 있지만, 최종 종지의 화성 진행은 조성 체계로 볼 때 딸림 조(dominant)에서 으뜸조(tonic)로 진행하는 음악이 대다수였다. 오브레히트의 에일로안 선법에 나타나는 조성, 무지카피타에 의한 반 음계적 화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이끎음 등은 선법이 점차 조성적 진행을 내 제하는 체계로 가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플랑드르악파의 마지막 주요 인물로는 조스캥을 꼽는다. 그는 주제를 사용한 모방 대위법 구조, 성부 간의 대조, 불허 화음을 사용한 근대적 화성, 가사의 내용에 따라 음악적 표현을 달리하는 무지카 레제르바타(music reserva ta) 기법을 통하여 르네상스의 음악을 중세 음악으로부터 독립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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